9월의 회고 Anti-Hero

한바탕 시끌벅적함이 지나간 뒤의 공허함. 항상 느끼는 거지만 익숙해지지도 않고 다시 메꾸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무언가에 깊게 빠지는 것이다. 혹자는 ‘덕질’이라고도 한다. 나는 무엇을(또는 누구를) 덕질할지 고민하면서 유튜브를 뒤적거리다가 반가운 사람을 다시 만났다.

 테일러 스위프트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였을까? 그때 한창 락에 빠져서 에이브릴 라빈이나 Sum41 같은 밴드 음악만 듣다가 빌보드로 유입되면서 알게 되었다. 기억이 오래돼서 가물가물한데 3집 가 나오기 전이었으니까 ‘You belong with me’를 가장 먼저 접하지 않았나 싶다. 컨트리 음악 같으면서 톡톡 튀는 멜로디, 하이틴 미드 감성의 뮤직 비디오, 그리고 무엇보다 테일러 스위프트가 너무 예쁘게 나와서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여담이지만 뮤직 비디오에 나오는 검은 머리 여성분도 테일러 스위프트라는 거… 것도 모르고 fox련이라고 욕했었네?

So, why can’t you see? You belong with me.

 많고 많은 아티스트 중에 테일러 스위프트는 내가 가장 사랑했고 유일하게 앨범 사서 모으면서 덕질한 아티스트였다. 왜 과거형이지? 그야 덕질 그만둔 지 꽤 됐으니까. 이유는 ‘더 이상 내가 알던 테일러 스위프트가 아니야!’였다. 5집부터 완전히 컨트리 팝의 색을 빼버리고 팝으로 전향하면서 전체적인 사운드가 강렬해지기 시작했고, 그것이 6집에서 절정을 찍었다. 나는 그것이 테일러 스위프트 답지 않다고 생각했다. 내가 동경하던 그녀의 모습은 기타 연주를 하면서 롤빵 머리(?)를 휘날리는 ‘팝의 요정’ 그 자체였으니까. 그때는 최전선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들이 다양한 시도를 하는 것에 대해 닫힌 시각으로 바라봤던 것 같다. 그 모든 것들이 테일러 스위프트였을 텐데. 그렇게 오랫동안 그녀를 잊고 살았다.

I’m the problem, it’s me.

 이야기는 다시 2023년 9월로 돌아가, 5년이 넘는 시간을 건너 나는 테일러 스위프트와 다시 만났다. 그리고 그녀는 한층 차분해진 상태로 자신이 문제(I’m the problem)라는 충격적인 고백을 털어놓았다. ‘세상에 그 테일러 스위프트가?‘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자기 비하적인 이야기를 음악으로 솔직하게 풀어내고 그런 자신의 모습마저 받아들일 수 있는 그녀의 용기가 너무 부러웠다.

 문제라는 것은 그것과 직접 마주 섰을 때 비로소 해결할 수 있다. 문제를 인지하는 것 만으로는 부족하다. 나는 무엇이 문제인가? 무엇이 나로 하여금 스스로를 혐오하게 만드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행동력’이다. 나는 입만 살아서 뻐끔거릴 뿐이지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 최소한 뭐가 문제인지는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와 직접 마주할 수는 없었다. 내가 부족하고 모자란 사람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되는 것이 너무나도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 포도는 아마 죽을 만큼 셔서 먹기 어려울 거야.‘라며 많은 것들을 회피하곤 했다. 그동안은 그랬다.

 하지만 지난 9월은 조금 달랐다. 개발자 커뮤니티 행사를 두 군데나 자원(동행자 포함)해서 가보았다. 그 중 처음 갔던 행사는 가서 오래 있지 못하고 발만 담가보고 오긴 했다. 그래도 처음이 어렵지 그다음은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즐기고 왔달까? 돌이켜보면 부트캠프에 참여하게 된 것을 트리거로 내 안에 무언가가 움트기 시작한 것 같다. 동기분들과 함께 공부하거나 스터디를 만들어 짧게 운영해 보기도 했고, 세 번의 프로젝트에서 모두 팀장을 맡아 팀을 이끌었다. 그 모든 경험들이 처음이라 실수투성이였지만, 유의미한 결과를 이끌어냈고 주변의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속으론 욕했을 수 있겠지만, 이런 거 생각하면 밑도 끝도 없다). 부트 캠프에서 경험한 모든 것들이 ‘신포도처럼 보여도 막상 먹어보면 나쁘지 않아’라는 학습의 결과로 남아 뇌리에서 패시브 스킬로 작동하게 된 것이다.

 나는 더 나은 내가 되었다고 확신한다. 그렇지만 현재 상태에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 이 회고글을 작성하는 것도 2주 넘게 작성해야지 마음만 먹고 10월의 초순이 다 되어서야 작성하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마음만 먹고 하지 않은 일들이 산더미다. 좀 더 행동력을 길러보자. 블로그 글도 매일 하나씩 써보고, 읽으려고 사놓은 책도 하나씩 읽어보고, 해커톤이랑 커뮤니티 행사도 참여해 보자. 그리고 취업까지.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잖아. 누구나 인생에서 결점 한두 개쯤은 가지고 있는 안티 히어로니까.

Long live all the magic we made!